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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케이크의 유래

글쓴이 : 은성학원
날짜 : 08-09-17 20:07
조회 : 3265

케이크의 유래

동양에서 쌀을 가공한 밥 → 떡 →과자가 만들어졌듯이 서양에서는 밀가루를 가공한 빵→케이크가 만들어졌다. 서양 케이크가 동양의 과자와 다른 점은 일찍부터 단맛을 내는 꿀, 계란, 동 ·식물성 기름, 버터, 치즈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발효 반죽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처음 케이크 형태를 갖춘 케이크가 출현한 곳은 이집트, 과당(Fructose)과 꿀을 넣어 설탕절임한 과일, 천연 얼음으로 만든 셔벗이 바로 그것이다. 8 ~ 9세기의 그리스 시대에는 이미 계란, 유지를 넣어 만든 케이크가 100종류에 달해 있었다.
로마제국 시대에 비로소 빵과 케이크가 분류되고, 그 각각의 직업별 조합이 생겼다. 5 ~ 15세기에 걸친 1,000년동안은 종교과자가 득세한 시대였다. 그때는 교회, 왕후 귀족들만이 빵 ·케이크 오븐을갖고 있으면서, 평민들에게 그 사용료를 물게 하는 특권제도가 있었다.

11 ~ 13세기는 십자군 원정으로 동방에서 설탕, 향신료가 들어오게 됨으로써 케이크의품질이 높아졌다. 또 15 ~16세기에는 포르투갈, 에스파냐가 중심이 되어 지리상의 발견이 이어졌다.
동양으로 가는 뱃길이 열리고 신대륙이 발견됨에 따라 동양에서 유입된 설탕, 향신료로써 케이크의 질을 높였다. 그와 동시에 인권존중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빵 ·케이크 오븐을 교회에서 독점하는 제도는 무너 졌다.

18세기에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그 결과 증기기관을 갖춘 공장에서 여러 가지 케이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반면 대량 생산에 알맞지 않은 생과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19세기가 되면 유럽 전체에 첨채(사탕무우)가 보급되어 첨채당의 공급체제가 이루어짐으로써,이 때 비로소 케이크가 대중화 되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 점차 다양화 국제화되고 있다.

케익은 서양에서 전래된 음식 중 이제는 우리 문화에서도 매우 친숙해진 것 중의 하나이다

흔히 "축하", "무병장수에 대한 기원", "약혼 및 결혼등의 경사" 등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필수 음식이 된 케익은 대중예술의 총아인 영화에서도 극 중 긴장감이나 사실감을 부각시켜 주기위해 아주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생일 케익을 촛불로 장식해서 생일파티를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인류학자들은 "중세 독일 농민들 사이에서 '킨테 페스테'라고 하는 어린이를 위한 생일 축하 행사가 기원이 되었다'라고 주장한다.

'킨테 파스테'는 생일을 맞은 아침에 눈을 뜨면 촛불로 장식된 케익을 아이 앞에 놓으면서 시작되며, 이 촛불은 저녁 식사 때 온 가족이 케익을 먹을 때가지 계속 켜 놓았다. 특히 촛불은 아이나이보다 하나 더 많게 하여 밝혀 놓았는데 하나 더 많게 밝힌 그 촛불은 "생명의 등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생일을 맞은 아이들은 선물과 음식을 나눠 먹고 소원을 빌며 촛불을 끄는 오늘날의 관습도 바로 독일의 '킨테 페스테'에서 유래된 것으로, "촛불은 단숨에 끌 것" "소원은 곡 비밀에 부쳐야 할 것"등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요즈음 청소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케익 크림 씌우기 등은 '루킹래징(Rooking Razzing)'이라 불리우는 서양인의 오랜 관습 중 하나이다.
이것은 "신체에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벌이는 장난으로상대방에게 호의적인 태도로 받아들어져 웃고 즐기며 친분관계를 확인하는 풍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