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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초콜릿의 전설

글쓴이 : 은성학원
날짜 : 08-09-17 19:36
조회 : 3690

초콜릿의 계절2월 최근에 들어서는 사시사철 인기 있는 품목이 되었지만. 발렌타인 데이가 들어 있는 2월이 오면 그래도 다시 한 번 초콜릿을 돌아보게 된다.
때마침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팀이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카카오에 노화를 억제하는 항산화물질 '폴리페놀'이 적포도주보다는 2배, 녹차보다는 3배, 홍차의 5배나 들어있다는 연구결과까지 발표하면서 초콜릿의 효능은 이제 장수 식품의 영역까지 넘나들게 되었다.
초콜릿의 원료를 제공하는 코코아나무(코코아는 카카오의 영어식 표기)의 정식 학명은 테오브로마 카카오(Theobroma)이다. 그리스어로 Theos는 신(God)을 뜻하고 broma는 음식을 뜻한다. 따라서 코코아나무는 '신의 음식 카카오'가 된다.
코코아나무 열매의 씨앗에 해당되는 카카오 빈((Cacao beans)을 말려서 만들고 이것에 설탕이나 우유등을 섞어 초콜릿을 만든다.
19세기 중반 네델란드의 반호텐이 가루를 개발하고, 스위스의 다니엘 피터가 우유를 첨가한 초콜릿을 만들어 각종 과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주로 음료로 애용되었다. 16세기 초 초콜릿이 스페인에 전파파된 후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지나치게 탐닉하는 바람에 한때 금지되었다가 1509년 교황 피우스5세가 직접 마셔보고 '이렇게 맛없는 음식이 중독될 리가 없다'고 해서 금지령이 해제되기도 하고, 기독교의 40일 금식 기간 동안 초콜릿이 단식을 깨뜨리는 음식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나 1662년 프랑카치오 추기경에 의해 '음료이므로 괜찮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지기도 했다.
카사노바가 즐겨 마신데다 한 백인 후작 부인이 초콜릿을 너무 많이 마시고 흑인 아이를 낳는 바람에 16세기 후반에는 음란한 음식으로 금기시되기도 했고, 18세기에는 지오반니 비앙키라는 의사가 초콜릿 음료로 발기 부전증 환자를 고쳤다고 해서 오랫동안 사랑의 미약으로 각광받기도 했다.
후에 초콜릿에 자연흥분제인 '페닐에틸아민' 이 들어있다는 것이 밝혀져 이러한 에피소드들이 어느 정도 인정받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초콜릿의 주성분 중의 하나인 카카오 버터에 함유된 '올레인 산'이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작용을 한다는 것과 초콜릿이 두뇌활동과 기분전환,심장,이뇨작용에 좋다는  것 등이 알려지면서 더욱 사랑받는 기호 기호 식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달콤 쌉쌉한 초콜릿 특유의 맛이 그 매력이라고 해야겠지만 그 맛처럼 씁쓸한, 어쩌면 고대 아즈택인들에게는 아주 슬픈 전설도 초콜릿은 간직하고 있다.
1509년 코르테스가 지금의 멕시코, 즉 아즈텍(Aztecs)에 도착할 때까지 카카오 음료와 카카오 열매는 이들 아즈텍인들의 고급음료였고 화폐였으며 부귀의 상징이었다. 특히 아즈텍의 왕 몬테즈아는 이 음료를 너무 좋아해 하루에 50여잔 씩이나 마셨는데 항상 황금 그릇에 담아 마시고, 마시고 난 황금잔을 호수에 던져 호수 바닥이 온통 황금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당시 유럽인들의 탐욕은 이러한 기회를 놓칠 리 없었고 곧바로 일어난 전쟁에서 아즈텍은 멸망하게 된다. 더구나 아즈텍인들은 이들 유럽에 정복자들을 자신들에게 신의 음식 초콜릿을 내려주고 옷감과 농사, 책력 등의 눈화를 가르쳐준 그들의 신 케쓰루 코아톨(흰 얼굴에 수염을 기르고 바다를 건너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던 신)의 화신으로 알고 궁정까지 초대해 환대했다니.....
초콜릿은 그러한 씁쓸함과 간직한 과자 중의 몇 안되는 몇 안되는 신화적 과자이다.


BNC월드 2월호에서 발췌